역대상 26장을 읽으면 많은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므셀레먀, 오벧에돔, 호사와 그들의 자손들의 이름이 이어지고, 그들이 속한 가문과 맡은 일이 기록됩니다. 이런 명단은 읽는 사람에게 단순한 정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의 기록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어떤 사람들의 섬김으로 세워졌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이름과 직무를 함께 기록합니다.
문지기라는 직무는 성전의 문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가문과 자손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1절은 고라 사람 가운데 아삽의 가문에 속한 고레의 아들 므셀레먀를 소개하고, 이어 오벧에돔의 가문과 호사의 가문을 기록합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단순히 역할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안에서 맡은 직무와 연결된 사람으로 기록합니다.
5절은 오벧에돔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어지는 6–8절은 오벧에돔의 자손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9절은 므셀레먀의 아들과 형제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록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과 사람이 맡은 일을 감당할 능력을 함께 보여 줍니다.
여기서 복은 봉사의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처럼 설명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 그 복을 얻는 조건이나 공식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본문은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능력을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람이 준비하고 사용하는 능력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겸손을 말하면서 잘하는 일을 가볍게 여기거나,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능력을 성실하게 사용하는 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의 자랑으로 삼는 것과, 하나님께 받은 것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배우고 준비하는 수고 역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역대상 26장의 흐름은 명단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12절과 13절은 문지기들이 직임을 얻고, 각 문을 지키기 위해 조상의 가문을 따라 제비를 뽑았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비라는 방법 자체를 오늘의 모든 결정 방식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성전의 섬김이 구체적인 직임과 배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13절은 대소를 막론하고 각 문을 지키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당시 문지기들이 각 문을 맡도록 구역을 배정받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그 배정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할 뿐,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성경은 사람과 문을 연결합니다. 셀레먀에게는 동쪽 문이, 그의 아들 스가랴에게는 북쪽 문이 맡겨졌습니다. 오벧에돔에게는 남쪽이 배정되었고, 그의 아들들에게는 곳간과 관련된 책임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숩빔과 호사는 서쪽과 관련된 배치를 맡습니다. 이름과 담당 구역이 함께 기록되면서, 성전을 섬기는 일이 실제적인 책임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장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맡았다는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이름으로 기록되고, 서로 다른 문과 책임에 연결됩니다. 동서남북의 구역이 나뉘고, 각 사람에게 맡겨진 일이 구체적으로 정해집니다. 예배 공동체는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맡은 일을 함께 감당할 때 유지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에도 같은 질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간과 경험, 재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일로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돌봄과 경청으로 공동체를 도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기술과 경험으로 필요한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역할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분별하는 일입니다.
이제 이 본문을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바라볼 때, 우리의 섬김을 붙드는 더 깊은 근거를 생각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하나님의 긍휼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 생명과 소망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섬김은 인정받기 위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어 내려는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은혜에 응답하여 다른 사람을 향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의 기준을 바꾸어 줍니다. 사람의 평가와 결과가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섬김은 쉽게 불안과 경쟁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대를 필요와 상황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볼 여유를 얻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는 받은 은혜를 따라 서로 섬기는 삶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지하여 섬기도록 권면합니다. 이것은 모든 일을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구하며, 서로의 도움을 받고, 함께 맡은 일을 이루어 가는 방향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오늘의 섬김은 먼저 듣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내가 좋다고 생각한 도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요청과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약속하며, 필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와 일상에서 맡은 역할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필요를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하고 함께 섬길 사람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섬김의 한 모습입니다.
역대상 26장의 문지기들은 당시 성전의 직무 배정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배치를 오늘의 모든 조직 방식에 대한 의무 규정으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기록되고, 능력이 언급되고, 사람이 구체적인 문과 책임에 연결되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받은 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묻게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능력은 나 자신을 위한 증명의 재료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사람을 향하고,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일을 감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가진 것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을지 살피는 자리에서, 받은 은혜는 삶의 구체적인 응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