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달에는 야소브암, 둘째 달에는 도대, 셋째 달에는 브나야가 나옵니다. 이름은 바뀌어도 각 반의 수효는 이만 사천 명으로 반복됩니다. 역대상 27장은 왕을 섬기는 지휘관들과 그들이 맡은 반열을 열두 달에 걸쳐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달마다 들어오고 나가며 직무를 이어 갑니다(대상 27:1–15). 이 기록에는 일을 맡을 사람만이 아니라 그가 일할 차례도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은 누군가의 뜨거운 마음만으로 한 해를 건너가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명단은 지파를 관할하는 지도자들을 보여 줍니다. 달에 따라 나눈 반열과 지파별 관할은 서로 다른 책임의 구분입니다. 앞의 목록이 일할 차례를 기록했다면, 여기서는 맡아 관할할 백성이 누구인지 밝힙니다(대상 27:16–22).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사람과 직무를 살피는 일이 있었습니다. 약속을 믿는 마음과 맡은 일을 정리하는 손을 서로 떼어 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봉사 순서를 정할 때에도 사람과 시간을 확인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함께하기로 한 사람에게 일정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두 일을 맡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일입니다. 누군가 하겠거니 하고 넘기면, 비어 있는 자리를 뒤늦게 발견한 사람이 준비하지 못한 부담을 떠안을 수 있습니다. 명단과 기록은 이런 부담을 미리 알아차리게 해 줍니다. 성실하게 섬기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질문은 일을 내려놓아도 되는지에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도,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은 어디까지일까요?

그 질문을 안고 목록의 끝에 이르면 뜻밖의 설명을 만납니다. 다윗이 이십 세 이하의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대상 27:23).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실 때 바라보게 하셨던 별이 왕의 수효 조사 곁에 놓입니다(창 15:5–6). 백성을 늘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왕은 그 백성을 조직하는 일을 맡았지만, 약속을 이루는 주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백성의 앞날을 자신의 관리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특정 교회의 인원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보증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약속을 믿는다는 말로 우리의 계획을 보증받으려 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우리가 세운 목표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원과 일정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까지 정할 수는 없습니다. 준비한 것이 많아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4절은 수효 조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전합니다. 요압의 조사는 끝나지 못했고, 조사한 수효는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도 실리지 않았습니다(대상 27:24). 앞에서는 수효가 거듭 기록되었는데, 여기서는 그 일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멈춰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수효를 세도록 명하신 일도 있으므로, 숫자를 세는 행위 자체를 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민 1:1–4·19). 그렇다고 왕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조사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왕의 명령도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습니다.

우리는 대개 힘이 모자랄 때 책임의 한계를 생각합니다. 더는 시간을 낼 수 없거나 감당할 사람이 없을 때 멈출 곳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앞에서는 다른 한계도 보게 됩니다.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어도 내 뜻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맡았다는 사실이 내 판단을 옳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책임은 얼마나 끝까지 해내느냐의 문제에서, 내가 내린 결정도 고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깊어집니다.

이 수효 조사를 서사로 전하는 21장에서는 다윗의 책임이 선명합니다. 요압이 반대했지만 왕의 명령에 따라 조사가 진행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악하게 여기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큰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합니다(대상 21:2–8). 뒤이어 그는 백성을 계수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다시 아뢰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대상 21:17). 왕의 기도에는 누가 명령했는지와 누가 그 일로 고통을 겪고 있는지가 함께 놓입니다. 공동체를 이끈다는 책임이 자신의 결정을 변호하는 데 머물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 서사는 왕의 고백만 바라보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하려는 천사에게 손을 거두도록 명하셨고, 다윗이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고 아뢸 때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천사가 칼을 칼집에 넣은 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일이었습니다(대상 21:15·26–27). 공동체의 소망을 다윗이 얼마나 훌륭하게 잘못을 인정했는지에 걸 수 없는 이유입니다. 멸망을 멈추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왕은 자신이 다스리던 백성과 함께 그 긍휼을 필요로 합니다.

재앙이 멈추었다고 이미 겪은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윗의 죄를 밝히는 기록과 하나님의 긍휼을 전하는 기록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못된 결정을 고치는 일이 수고해 온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한 뒤 무엇으로 다시 섬길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 돌아설 소망은 실패를 만회할 실적에서 오지 않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부르짖는 다윗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의 긍휼에 있습니다. 그분께 나아가기 위해 내 결정이 끝까지 옳았다고 우길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정당성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부르짖을 분이 계시기에, 잘못을 드러내는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머물며 무엇을 고쳐야 할지 살필 수 있습니다.

봉사 인원과 역할을 정하는 일에 이 믿음을 가져가 보면, 숫자가 하는 일이 달라집니다. 부족한 인원을 확인했을 때에는 함께할 사람을 더 구하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지금 맡은 이들이 실제로 낼 수 있는 시간과 감당할 일을 물어야 합니다.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형편까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직장이나 가정의 사정이 바뀌어 낼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면, 규모나 역할을 조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모자란다는 사실만으로 누구의 믿음이나 잘못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계획을 고치는 데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월별 반열과 지파별 관할을 구별해 읽으면, 오늘의 봉사에서도 일할 차례와 맡을 범위를 함께 묻게 됩니다. 날짜와 인원이 정해졌어도 무엇을 어디까지 맡는지 모르면, 준비할 일도 다음 사람에게 넘길 일도 분명해지지 않습니다. 맡기로 한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어느 시점에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계속 바뀌는 계획도 다른 사람의 시간을 흔들 수 있습니다. 이미 준비한 일이 있다면 변경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줄일 수 없는 필요가 남는다면 그것을 누가 언제 맡을지도 정해야 합니다. 들은 사정이 역할과 일정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런 수정까지 감당하려면 처음 계획을 밀고 가는 것보다 더 손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알고도 내 계획을 지키려고 그 사람을 믿음이 부족하다고 몰아붙였다면, 회개할 것은 그 판단과 압박입니다. 이때에는 배치를 바꾸는 것과 함께 그 판단을 거두고 사과해야 합니다. 사과한 뒤에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그대로 맡겨 둔다면 부담은 계속됩니다.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형편과 겪은 부담을 말할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수정에 따르는 설명과 불편도 먼저 맡아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결정의 책임까지 똑같이 나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이유로 잘못과 남은 부담을 더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용서의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고친 계획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해 준비해도 인원이 채워지지 않거나 일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 불확실성 앞에서 필요한 일을 계속 준비하되, 우리가 세운 계획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 앞에 드러난 잘못까지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달의 봉사 순서를 정하는 일도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준비에는 연락할 사람의 이름과 함께, 내가 다시 물어야 할 사정과 고쳐야 할 결정도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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