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지을 사람에게 다윗은 하나님을 알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을 건축자로 택하셨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그가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대상 28:6, 9–10).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세우는 사람에게 왜 이런 당부가 필요했을까요?

다윗은 이미 건축할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많이 치르고 피를 흘린 그에게 하나님은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솔로몬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준비한 사람과 실제로 지을 사람은 달랐지만, 성전은 구체적인 수고를 통해 세워져야 했습니다. 다윗은 아들에게 힘써 실행하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삶을 강조하면서 맡은 일의 무게를 덜어 내는 것은 이 당부를 충분히 듣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전을 잘 짓는 것으로 모든 요구에 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은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하고,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마음과 의도를 아신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그분을 만날 것이며, 그분을 버리면 하나님도 솔로몬을 영원히 버리실 것이라고 전합니다(대상 28:8–9). 선택받은 왕이라는 지위가 그 경고를 지워 주지 않습니다. 건축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했습니다.

이 대목은 우리가 자신의 신앙을 살피는 방식에 질문을 던집니다. 맡은 일을 끝냈는지는 비교적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준비했고 얼마나 시간을 들였으며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 수고는 실제로 누군가를 돕고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다만 자신이 한 일을 말하는 데 익숙해질수록, 그 일을 하는 동안 누구의 말을 들었고 무엇을 외면했는지는 놓치기 쉽습니다. 완료한 일만 셀 때에는 그 과정에서 듣지 못한 사람의 말까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삶 전체를 대신 평가하게 되면, 충실했던 수고가 오히려 다른 잘못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이유로 쓰일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드렸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한 일을 가볍게 여기거나, 일을 잘 마쳤다는 이유로 함께한 사람의 불편을 지나칠 수 있습니다. 수고의 진실함을 지키려면 그 수고로 덮을 수 없는 일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아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실적 너머까지 삶을 살피게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이런 살핌과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분에 관해 배운 내용을 기억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 주어진 당부에서 앎은 섬김으로 이어지고, 섬김은 계명을 지키며 맡은 일을 행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뜻을 고집해야 할 이유만 찾는다면, 그 앎은 지금의 선택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맡은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에는 일의 성과뿐 아니라 그 일을 해 나가는 동안 그분께 배우고 따르는 삶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음을 더 엄격하게 검사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려 하면 또 다른 부담이 생깁니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해냈는지로 자신을 판단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순수하게 했는지로 자신을 판단하게 됩니다. 감사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을 수 있고, 기꺼이 시작한 일에 지칠 수도 있습니다. 지치거나 마음이 흔들린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을 버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길 만한 사람인지 다시 입증해야 한다면, 정직하게 자신을 보는 일조차 두려워집니다. 온전한 마음을 요구하시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그 마음까지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일까요?

다음 장에 기록된 다윗의 기도는 이 물음을 더 깊이 보게 합니다. 다윗은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 달라고 구합니다. 아들 솔로몬에게도 정성된 마음을 주셔서 계명을 지키고,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대상 29:18–19). 아들에게 요구했던 마음을 이제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는 사실은 자신을 숨길 수 없다는 뜻이면서, 그 마음을 가지고 누구에게 나아가야 하는지도 알려 줍니다.

그 기도에서 솔로몬은 여전히 계명을 지키고 성전을 지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에게 필요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도록 구합니다. 마음이 완전해질 때까지 할 일을 미루거나, 일을 하느라 마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을 따라 행하는 두 일이 함께 갑니다. 다만 도움을 구하라는 말을 듣고도, 부족한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가도 되는지 망설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 그분 앞에 설 근거가 무엇인지가 중요해집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의지하는 구원의 근거는 에베소서에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그 구원은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엡 2:8–9). 그 앞에는 하나님이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엡 2:4–6).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 내밀 만한 수고가 쌓이기 전에, 마음의 순수함을 증명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의 수고를 세어 하나님이 자신을 받아 주실지를 판단하던 생각을 바꿉니다. 많이 기여한 날에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린 날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다는 선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사람으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분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질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 구원을 선한 일과 곧바로 연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일을 행하며 살아가도록 예비하셨습니다(엡 2:10).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은 일의 가치를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게 합니다. 우리를 구원한 공로가 될 수 없는 수고도, 구원받은 우리가 이웃을 돕고 하나님께 응답하는 일로는 소중합니다. 그렇다면 일을 살피는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인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수고가 실제로 누구를 돕고 있는지까지 물어야 합니다.

그 수고가 실제로 누구를 도왔는지 살피다 보면,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에도 고칠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잘 해낸 일은 감사하며 기뻐하고, 부족했던 일은 그대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는 일은 잘못의 책임을 흐리는 데 쓰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여를 앞세워 피하고 싶었던 말도 듣게 합니다. 함께 일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애쓴 시간을 설명하기에 앞서 그가 겪은 일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지금 감당할 선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의 태도를 고치는 동안에도 맡은 일은 계속됩니다. 끝내야 할 일에는 성실하게 손을 대고, 도움이 필요하면 구하며, 다른 사람의 수고를 자신의 성과 속에 묻어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을 함께 감당하는 사람을 살피다 보면 자신의 계획을 고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윗은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구하면서, 솔로몬에게 계명을 지킬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재료를 준비한 뒤에도 마음을 위한 기도는 이어졌습니다. 우리도 한 일을 마친 뒤에 하나님께 배울 것이 남아 있습니다. 수고의 기쁨과 고칠 일을 함께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맡은 일을 끝냈다는 감사 속에서도,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해 달라는 기도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