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성전을 직접 완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맡은 준비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의 여러 공간과 곳간, 안쪽 방과 속죄소의 설계도를 건넵니다. 이어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직무, 성전에서 쓰일 기물과 그 기물에 필요한 금과 은의 무게까지 설명합니다(대상 28:11–18). 성전을 세우려는 뜻은 이렇게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어떤 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는 일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지 않을 일을 막연한 당부로 남기지 않고, 뒤이어 맡을 사람이 살펴야 할 내용을 전합니다.

준비와 완성은 같은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마련한 설계는 솔로몬이 맡을 일의 출발점이지만, 설계가 전달되었다고 건축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에게는 그 일을 행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앞선 사람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고, 다음 사람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알아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맡은 일을 이어 준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다음 사람이 실제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건네는 일입니다.

기물마다 쓰임에 맞는 형태와 무게가 정해지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직무도 함께 전달됩니다. 솔로몬이 넘겨받는 것은 금과 은의 양이나 물건의 목록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예배에서 어떤 용도로 쓰이며 누가 어떤 일을 맡는지에 관한 준비였습니다. 오늘의 일에서도 자료와 물건만 넘겨주고 그것을 왜 사용하는지, 누가 맡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다음 사람은 빈자리를 혼자 해석하고 메워야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전한다는 것은 내용뿐 아니라 그 쓰임과 맡은 몫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다윗은 이 설계의 출처를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19절에서 그는 여호와께서 그 모든 일을 알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성전 설계에 하나님의 뜻과 주도성이 놓여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은 그 역사와 언약, 예배의 맥락 안에 놓인 특별한 과업이므로, 이 진술을 오늘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께 직접 받은 청사진이라는 보증으로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성전의 중심은 다윗이나 솔로몬의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임재와 예배입니다. 설계를 전달하는 일은 자신의 구상을 영구히 남기는 일이 아니라, 자신보다 큰 하나님의 일을 다음 사람이 맡도록 하는 일입니다.

설계가 전달된 뒤 다윗은 솔로몬에게 강하고 담대하게 그 일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의 모든 일을 마칠 때까지 함께하시며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대상 28:20). 이 말씀은 솔로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약속하면서 바로 그 과업을 행하라고 명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힘만으로 일을 떠맡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 약속을 이유로 맡겨진 일을 미룰 수도 없습니다. 약속은 그의 책임을 지워 버리는 대신, 두려움 속에서도 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다음 절은 그 일을 솔로몬 혼자 감당하도록 남겨 두지 않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이 있고, 여러 일을 맡을 기술자들이 있으며, 장관들과 백성도 함께할 것이라고 다윗은 말합니다(대상 28:21). 이들의 역할은 같지 않습니다. 각자는 맡은 직무와 기술에 따라 성전의 일을 돕게 됩니다. 솔로몬에게 과업이 맡겨졌다는 사실은 다른 이들의 몫을 지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미 공동체의 여러 역할과 맞물려 제시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담대히 행하라고 권하면서, 그가 혼자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맡겼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의 역할을 흐리거나, 공동의 일을 지도자 한 사람의 역량과 성취로만 설명하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이어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며, 다른 이들이 자기 몫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협력의 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모든 결과를 통제하려는 시도와 다릅니다. 각자의 몫이 무엇인지 드러날 때, 공동의 목적은 누군가의 독점적인 성취가 아니라 함께 감당할 일로 모습을 갖춥니다.

에베소서는 공동체를 바라보는 더 깊은 근거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시고, 서로 멀리 있던 이들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엡 2:13–18).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제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입니다(엡 2:19).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모퉁잇돌이 되시고, 공동체는 그분 안에서 함께 세워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어 갑니다(엡 2:20–22). 신자들은 유능함이나 공로를 증명해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화평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졌기에, 서로를 경쟁자나 자신의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함께 세워져 가는 이들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참여를 존중하는 일은 책임을 느슨하게 만드는 양보가 아니라, 공동체가 누구의 은혜로 존재하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이 복음은 책임을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임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미 하나님의 권속으로 불러 주신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일을 움켜쥘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잃는 일이 아니며, 앞선 사람이 준비한 것을 이어받는다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인계한 사람이 모든 결정을 계속 대신한다면 새 담당자가 자기 몫의 판단을 할 여지는 줄어듭니다. 필요한 설명과 도움을 제공하되, 그 사람이 질문하고 판단할 자리를 남겨 두는 것도 맡긴 일을 책임 있게 이어 주는 방식입니다.

어떤 일을 마치고 자리를 옮길 때, 혹은 새로운 사람이 그 일을 이어받을 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남길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맡은 일을 이해하고 자신의 책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나눌 수는 있습니다. 앞선 사람의 준비는 다음 사람의 판단을 없애는 대신, 그 판단이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넘겨주는 일에는 이미 결정된 것을 분명히 알리는 일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을 미완성으로 밝혀 두는 일이 함께 포함됩니다.

다음 사람을 내 일을 대신할 사람으로만 볼 때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볼 때, 우리가 건네는 것은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