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잘못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우리는 알지 못했는지, 누가 사실을 감추었는지, 책임 있는 사람은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마땅히 제기해야 할 질문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전모를 밝히자는 요구 속에는 때때로 다른 욕망도 섞입니다. 피해자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털어놓았는지까지 알고 싶어집니다. 그때 우리는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알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실을 알아야 할 책임과 다른 사람의 삶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알 권리는 권력과 제도의 비밀주의에 맞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공적인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 누구의 잘못으로 피해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면 사람들은 책임을 물을 수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신앙이 이런 권리를 덜 중요한 것으로 만들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자기 잘못을 감추면서 세상의 은폐를 비판한다면 신앙의 언어는 신뢰를 잃을 것입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알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무엇을 알기 위해 그 권리를 주장하며, 알게 된 사실을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에베소서는 이 물음에 익숙하지 않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 5:8)고 말합니다. 여기서 빛은 어떤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나 타인의 속사정을 들여다볼 권한이 주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달라진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절은 빛의 열매를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밝힙니다. 빛의 사람은 남의 감춰진 것을 얼마나 많이 찾아냈는지보다 자신이 무엇을 의롭게 행하는지로 드러납니다.
이어지는 명령은 더욱 날카롭습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바울은 빛의 자녀에게 어둠의 일을 모른 체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잘못에 참여하지 않는 데서 멈추지도 않습니다. 드러내고 책망하라는 요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책망의 대상은 사람들의 은밀한 삶 전체가 아니라 열매 없는 어둠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불의한 행위가 발생했다면 ‘교회를 사랑하니 덮자’는 말은 이 구절을 따르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잘못을 보이지 않게 할 때, 보호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엡 5:12)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말하기 부끄러운 것은 먼저 악을 행하는 이들의 행위이지, 피해자의 존재나 피해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피해자의 증언을 금하거나 사건을 비밀로 만들라는 명령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어둠을 책망하라는 앞선 명령도 은밀한 행위의 모든 세부를 끝없이 되풀이해 말하라는 지시가 아닙니다. 바울의 문맥은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고 빛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촉구합니다.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이 악이 남긴 수치의 재현까지 무제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이 두 요구를 함께 붙들어야 알 권리를 둘러싼 혼란이 선명해집니다. 책임 있는 사람의 행동을 밝히는 일과 피해를 입은 사람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일은 구별됩니다. 누가 권한을 남용했는지, 문제를 보고받은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같은 피해를 막을 장치가 있는지는 공동체가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판단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개인의 상담 내용, 과거의 상처, 관계의 세부까지 누구나 알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그 사람을 다시 무방비로 드러내는 정보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서로를 가족처럼 여긴다는 이유로 이 경계를 쉽게 놓칠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공동체라는 사실이 모든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유할 권한을 주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기도나 상담을 요청하며 맡긴 말은 공동체 전체가 소유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대로 지도자나 기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까지 개인적인 일이라고 이름 붙여 감춘다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책임의 회피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지킬 것인지 판단하려면 그 정보가 누구의 안전을 위해 보호되는지, 그 침묵으로 누가 책임을 피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여기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반론이 있습니다. 공개하지 않고서는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내부의 문제 제기를 듣지 않고, 보고받은 사실을 축소하거나, 조사를 미루고 있다면 더 넓은 공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정보를 제한하라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피해자를 다시 침묵의 자리로 밀어 넣게 됩니다. 불필요한 노출을 막는다는 원칙은 필요한 증언마저 막는 규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둠의 일을 책망하라는 말씀은 불편한 사실을 드러내는 부담을 교회가 피할 수 없게 합니다.
그렇다고 공개의 필요가 확인되는 순간 공개의 범위까지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밝히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는지, 누구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당사자의 뜻과 안전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어떤 자료는 구체적인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고, 어떤 자료는 이미 확인된 잘못을 더 자극적으로 보여 주는 기능밖에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경우를 미리 하나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당사자가 자신의 이름과 경험을 밝히기로 선택했을 때 보호를 내세워 그 말을 대신 지워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의 존엄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권리와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묻어 두어야 할 것’이라는 표현에도 분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묻어서는 안 되는 것은 책임 있는 이들이 저지른 잘못과 그 잘못을 은폐한 사실입니다. 반면 함부로 파헤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적 책임을 밝히는 데 필요하지 않은 사생활과 당사자가 공개하지 않기로 한 부분입니다. 다만 지금은 보호해야 할 정보라도 정당한 조사나 피해 방지에 필요하다면 적절한 책임 주체에게 제공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비공개와 은폐는 같은 말이 아니며, 공개와 진실성도 같은 말이 아닙니다. 정보를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전하는지가 그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 문제는 결국 진실을 대하는 태도에 이릅니다. 알게 된 사실을 소유물처럼 여길 때 사람은 그 정보를 전할 권한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게 자신의 삶 전체를 넘겨주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이 확인한 범위와 아직 모르는 부분을 구별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사실이 전달되도록 하며, 자신의 설명이 다른 사람의 말을 덮지 않는지 살피는 책임이 남습니다. 완전한 정보와 결과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 책임의 방향은 그리스도에게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에베소서는 빛의 자녀가 되라는 권면에 앞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주셨다고 말합니다(엡 5:2). 그분은 사람을 드러내어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분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이 먼저이고, 그 사랑을 받은 이들에게 빛의 삶이 요청됩니다. 14절의 약속에서도 비추시는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신자는 빛의 주인인 양 모든 사람의 숨은 부분을 심판하는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받은 빛 아래서 자신이 행하는 일부터 분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진실을 밝힐 때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교회의 평판이 아닙니다.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듣고, 책임 있는 사람과 제도의 행위를 검토하며, 보호와 필요한 조치가 실제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동시에 누구나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세부를 공개하여 피해자에게 해명과 노출의 부담을 더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내용을 알려야 책임을 다한 것도 아니고, 극소수만 알고 끝냈다고 진실을 지킨 것도 아닙니다. 진실이 책임에 도달하는 길을 열되 사람의 존엄을 그 길의 대가로 요구하지 않는 일이 남습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끝까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무관심의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아직 밝혀야 할 잘못은 밝혀야 하고, 이미 맡겨진 사적인 이야기는 함부로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 경계를 정하는 일은 때로 불편하고, 같은 사건에서도 공개의 범위를 두고 판단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피해 모든 것을 감추거나 모두에게 내보이는 두 선택만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우리가 남의 삶을 전부 소유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빛 아래서 우리는 알아야 할 진실 앞에 물러서지 않으면서, 알 권리가 없는 부분 앞에서는 멈추는 법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