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딸들은 여인에게 묻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연인들보다 무엇이 그토록 특별하기에 이런 부탁을 하느냐고. 여인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시작합니다. 정금에 견준 머리,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털, 비둘기를 닮은 눈, 향기로운 뺨과 입술. 그의 몸을 묘사하는 말이 보석과 꽃, 백향목 사이를 오갑니다. 곁에 없는 사람을 향해 여인의 시선은 이토록 오래 머뭅니다.
이 찬사는 눈에 보이는 특징을 하나씩 확인하는 목록이 아닙니다. 금의 빛깔과 향료의 향기, 꽃의 부드러움과 단단한 기둥의 아름다움까지 불러들이는 까닭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얼마나 귀한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다른 사물들이 한 사람을 묘사하는 데 모여듭니다. 여인은 그를 비교 가능한 외모의 기준으로 내세우려는 듯하지 않습니다. 그의 특별함을 말하려 할수록 언어는 풍성해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시의 감각을 넓혀 갑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여인은 그를 자신의 연인이며 친구라고 소개합니다. 얼굴과 몸의 찬사가 한 사람과 맺은 가까운 관계의 말로 모입니다. 앞에서는 남성의 목소리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길게 노래했다면, 이제 여성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할 자리가 주어집니다. 여인은 누군가의 칭찬을 받는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이 바라본 사람을 자신의 말로 설명합니다. 이 목소리는 아가가 사랑을 얼마나 생생하게 노래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대답이 나오기까지 여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읽고 나면, 같은 찬사가 다르게 들립니다. 이 노래는 연인이 곁에서 그 말을 듣는 편안한 자리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인은 그를 찾아 나섰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찾는 길에서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가 5장의 후반부를 읽는 동안 앞부분이 지워지지 않는 까닭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가 겪은 일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5장 첫 절에는 동산에 들어와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앞 장의 초청에 이어지는, 사랑의 감각이 가득한 말입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인은 잠들어 있으면서도 마음은 깨어 있다고 말합니다. 밖에서는 연인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그의 머리와 머리털에 가득한 이슬이 밤중의 문 앞 장면을 선명하게 합니다.
여인은 이미 옷을 벗고 발을 씻었다며 반문합니다. 그 대답에는 문을 열기까지의 망설임이 묻어납니다. 문틈으로 연인의 손이 움직이자 여인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여인은 일어나 문을 엽니다. 손에는 몰약이 묻어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문 너머에 있던 연인은 이미 물러갔습니다. 문은 열렸지만 그 앞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여인은 그를 찾고 부릅니다. 아무리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불러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가의 언어는 이 순간부터 향기와 가까움의 기쁨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부름에 대한 응답이 없다는 사실이 시의 리듬을 바꿉니다. 문 앞에서 일어난 일의 속뜻을 낱낱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여인에게 남은 부재는 분명합니다. 그리움은 때로 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더 커집니다.
밤의 성읍을 돌아다니던 여인은 파수꾼들을 만납니다. 시 속에서 그들은 여인을 때려 상하게 하고 겉옷을 빼앗습니다. 이 장면은 불편할 만큼 갑작스럽습니다. 찾던 사람의 얼굴 대신 파수꾼들의 폭력이 여인의 몸에 닿습니다. 연인이 문 앞에서 떠난 일과 파수꾼들이 폭력을 행사한 일은 서로 다른 행동입니다. 이 밤이 꿈의 장면인지 실제 사건을 담은 시적 묘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래 안에서 여인이 입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여인은 뒤이어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사랑 때문에 아프다고 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연인을 찾아 헤매던 여인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맡깁니다. 파수꾼들에게 맞은 뒤에도 자신의 그리움을 전할 목소리는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건네는 질문은 찾음의 방향을 바꿉니다. 여인은 문을 열고 거리를 헤매도 만날 수 없던 사람을 이제 말로 그려 보입니다.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동안 시의 속도도 달라집니다. 그를 찾아 부르던 말은 빛깔과 향기, 모양을 하나씩 짚으며 오래 머무는 찬사로 바뀝니다. 연인의 행방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지만, 여인이 그를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는지는 갈수록 또렷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인이 연인을 길게 묘사하는 동안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파수꾼들에게 맞고 겉옷을 빼앗긴 사건은 찬사가 시작되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 장면을 이미 읽었습니다. 그래서 연인의 눈과 뺨을 노래하는 말의 아름다움과, 그 말을 하는 여인의 몸에 가해진 폭력이 한 편의 시 안에서 서로 마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시선과 그 시선을 지닌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함께 들립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묻는 것은 여인의 상처가 아니라, 여인이 그토록 찾는 연인의 특별함입니다. 여인은 그 물음에 아름다움을 하나씩 펼쳐 답합니다. 질문과 대답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찬사는 그 자체로 충분한 시간을 얻습니다. 다만 독자인 우리는 앞서 파수꾼들에게 당한 일도 보았습니다. 그때 입은 상처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누가 그 일을 돌보았는지는 시가 말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의 시선이 연인의 아름다움에 머무는 동안, 그 아름다움을 말하는 여인 자신도 눈앞에 남습니다.
한 사람의 말에 애정과 상처가 함께 담겨 있을 때, 듣는 이에게도 조급함이 찾아옵니다. 애정이 여전하다는 말을 들으면 아픔은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픔을 듣고 나면 애정의 언어까지 거짓으로 취급하기 쉽습니다. 교회에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신앙적 결론으로 서둘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누가 대신 써 주는 판결문이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기쁨과 아픔을 모두 표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편의 이야기에서 어떤 대목을 더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사랑하셨고, 아버지께 들은 것을 알려 주셨기에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을 말씀하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그보다 먼저 그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행동 위에 놓여 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먼저 베풀어지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서로를 향한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이 말씀 앞에서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의 자리도 달라집니다. 여인이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를 평가하기보다, 여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어떤 해를 입었는지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받은 사랑은 상대의 말을 듣고 그 사정에 맞는 돌봄을 찾는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의 찬사에 감동하면서도 파수꾼들의 행동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고, 여인의 마음을 존중하면서 여인의 안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내어주심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명분이 아닙니다.
아가의 여인에게 돌아오면, 여인은 다시 향기와 빛과 아름다움의 언어로 연인을 부릅니다. 온몸을 따라 이어진 찬사 끝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친구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5장의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 장에서 다른 여성들은 연인이 어디로 갔는지 묻고, 여인은 동산과 서로에게 속해 있음을 노래합니다. 독자는 이제 여인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뿐 아니라 그 사랑을 말하는 이가 어떤 밤을 지나왔는지도 압니다. 여인의 찬사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의 밤길까지, 시는 우리 눈앞에 남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