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6장은 사랑하는 이가 어디로 갔는지 묻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인에게 함께 찾겠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인은 사랑하는 이가 동산으로 내려가 꽃밭에 이르렀다고 답하고, 백합화와 양 떼를 말하는 가운데 자신과 그 사람의 관계를 고백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아 6:3).
서로에게 속한다는 말입니다. 이 고백에 이어지는 노래에는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찬미가 가득합니다. 관계를 고백하는 말 곁에 상대를 기뻐하는 말이 놓여 있습니다. 서로에게 속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 것일까요.
앞선 노래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이 특별한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인은 그의 머리와 눈, 손과 다리를 말하며 몸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그를 향한 말은 온몸이 사랑스럽다는 찬미에 이르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친구라고 부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어지는 행방의 물음과 동산에 관한 답, 상호 소속의 고백에는 이렇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말해 온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데에는 그를 바라보는 기쁨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아 5:9–6:3).
사랑하는 사람과 맺은 관계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 사람을 알아가는 일 사이에는 더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 있어도,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고 기뻐하는지에는 저마다의 대답이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속한다는 고백을 어느 한쪽이 상대를 마음대로 다룰 권리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노래에서는 서로를 향한 말이 이어집니다. 여인이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움을 말한 데 이어, 이제 여인을 향한 찬미가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그 찬미는 디르사와 예루살렘의 이름을 불러옵니다. 여인은 도시처럼 아름답고,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당당한 사람으로 노래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말에 이만한 크기와 위엄이 실려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친밀한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시는 도시와 군대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사랑받는 이의 아름다움에는 부드러움과 함께 당당함도 있습니다. 그 당당함까지 기뻐하는 말이 사랑의 노래 안에 들어 있습니다.
도시와 군대를 불러오던 시선은 머리털과 이, 너울 속의 뺨으로 가까워집니다. 머리털에는 길르앗 산 기슭의 염소 떼가, 이에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가 겹쳐집니다. 너울 속의 뺨을 말할 때에는 석류 한 쪽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몸을 말하는 동안 산과 짐승과 열매가 잇달아 불려 나옵니다. 이 비유들을 읽는 동안 아름답다는 한 단어는 빛깔과 모양을 얻습니다. 몸을 가진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 이처럼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자세히 말하는 노래에는 그를 바라보는 기쁨에 머무를 시간이 있습니다.
눈을 향한 찬미에서는 그 강렬함이 더욱 또렷합니다. 눈길을 거두어 달라고 할 만큼 그 눈이 놀랍다고 노래합니다. 이 말에서 우리가 듣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눈이 지닌 힘에 대한 감탄입니다. 상대의 눈을 노래하는 목소리에는 그 눈길을 받는 사람도 함께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일은 이처럼 서로를 향한 관계 안에 있습니다. 소속을 고백하는 말에 이어 이렇게 상대의 눈을 말하는 찬미가 놓여 있습니다. 서로에게 속한 관계 안에서도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노래는 많은 왕비와 후궁과 시녀를 말하다가 하나뿐인 사랑하는 이에게 집중합니다. 하나뿐이라는 말에는 이 사랑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특별한 자리가 드러납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곁에 놓인 다른 목소리들입니다. 그는 그를 낳은 어머니에게 귀중한 사람이고, 여자들은 그를 복되다고 하며,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합니다. 한 사람의 귀함을 말하는 노래에 여러 사람의 찬미가 함께 울립니다. 연인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있고, 그를 알아보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그 관계들까지 함께 말한다는 점에 마음이 머뭅니다.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는 그가 다른 이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귀히 여기는 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아침 빛과 달과 해에 비겨지고, 당당한 군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감탄이 몸의 가까운 세부에서 하늘의 빛에까지 펼쳐집니다. 여기에는 그 사람을 기뻐하는 넉넉한 언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 아름다움을 말하는 일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 언어입니다. 상호 소속의 고백 곁에서 이 찬미를 충분히 듣고 나면, 우리가 관계를 말할 때 놓치기 쉬운 한 가지가 선명해집니다. 그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귀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과 실제로 그를 귀히 대하는 일 사이에는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를 아끼는 말과 태도가 저절로 갖추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듣고, 내가 알아본 좋은 것을 그에게 전하는 일에는 관심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노래가 보여 주는 사랑의 기쁨을 우리의 응답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그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는 사랑의 출발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일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그를 통하여 우리가 살게 하려 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고백에는 생명과 죄의 문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사랑은 우리의 삶을 살리는 사랑이며, 우리가 지닌 죄를 다루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사랑에 앞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요일 4:9–10, 19).
하나님께 먼저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을 시작할 근거를 자신 안에서만 찾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응답에 앞서 아들을 보내신 일이 있고, 우리는 그 사랑을 의지하며 다른 사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사랑을 연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할 책임을 지게 됩니다(요일 4:11). 하나님의 행동에 응답하는 자리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관계 속에 열립니다.
그 책임에는 우리가 실제로 선택하고 행해야 할 응답이 남아 있습니다. 아가의 연인들이 주고받는 찬미를 읽는 그리스도인은 이 부름 앞에 섭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기뻐하며 그에게서 알아본 아름다움을 말하는 일도 그 응답의 한 모습입니다.
찬미에는 상대를 기뻐하는 즐거움이 있고, 그 즐거움을 상대에게 전하는 너그러움도 있습니다.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표현을 생략해도 된다고 여겼다면, 그 사람이 내게 어떤 기쁨인지를 다시 말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향한 칭찬은 내가 그를 알아보고 있다는 응답이 됩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그에게 맞는 진실한 말을 찾는 데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속한다는 고백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갈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받은 사랑을 의지하며,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맞는 진실한 말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