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아가 8장 6절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가까이 간직해 달라는 청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머물고 싶고, 그의 삶에서 귀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바람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엇인가 해 주고 싶은 마음과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이 노래 안에 함께 있습니다.

이 청을 건네는 이는 상대의 마음에 자신을 둘 자리를 부탁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며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기쁘고, 내가 건넨 마음을 상대도 기쁘게 받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의 소중한 기쁨입니다. 아가의 노래는 그런 갈망을 충분히 말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소중히 대하는 일은 그가 나를 향해 품는 이런 바람까지 귀하게 여기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노래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라고 말합니다. 누구도 가볍게 밀어낼 수 없는 죽음에 견줄 만큼 사랑의 힘이 크다는 것입니다. 7절의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라는 표현도 그 힘을 노래합니다. 사랑을 대수롭지 않은 감정처럼 다룰 수 없게 하는 말들입니다. 이 비유들은 사랑의 세기를 높이 드러냅니다. 사랑이 죽음을 없앤다거나 모든 관계가 원하는 결말에 이를 것이라고 약속하는 문장은 아닙니다.

그렇게 강한 사랑 앞에서 재산의 힘은 멈춥니다. 7절은 한 사람이 온 재산을 다 주어 사랑과 바꾸려 해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돈을 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도 사랑하는 마음을 사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로 끌 수 없다는 말이 사랑의 강함을 드러낸다면, 재산과 바꿀 수 없다는 말은 그 사랑을 거래하려는 시도를 물리칩니다. 사랑의 귀함을 알아보는 데에는 이 두 말을 함께 듣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가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도 넉넉합니다. 2절에는 그에게 향기로운 술과 석류즙을 마시게 하려는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선물을 고르고 함께 보낼 시간을 마련하는 일에도 이런 마음이 담길 수 있습니다. 그가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시간부터 주는 사람의 기쁨은 시작됩니다. 수고가 들더라도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과 힘을 씁니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살피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나누며, 함께하기 위해 다른 일을 미루기도 합니다.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이런 수고를 하찮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정성을 담은 선물은 마음을 전하고, 꾸준한 돌봄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실제 생활 속에 놓아 줍니다. 받은 사랑을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현할 때, 주고받는 기쁨은 더욱 깊어집니다.

그런데 수고를 근거로 상대가 느껴야 할 감정까지 정하려 하면 관계가 달라집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비용만큼 상대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기뻐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응답을 받아 낼 권리가 있다는 생각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선물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선물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미리 정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바라는 만큼의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수고의 목록을 꺼내 들 때, 상대는 사랑하는 사람보다 갚아야 할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습니다.

이미 함께 맺은 약속에는 서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약속이 깨졌을 때 서운함을 말하고 책임을 묻는 일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데 필요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약속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살펴야 할 것은 우리가 함께 약속한 책임과, 내가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 만들어 내는 권리의 차이입니다.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우는 대신, 그 바람을 상대가 갚아야 할 빚으로 만드는 순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돈 대신 성실함을 대금으로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고 한결같이 애쓰면 마침내 원하는 사랑을 얻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함까지 사랑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삼으면 같은 거래가 다시 시작됩니다. 기대한 응답을 얻지 못했을 때 그동안의 돌봄을 모두 실패로 여기거나, 자신이 충분히 애쓰지 않았다고 몰아붙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이 내가 바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결과만으로 내 수고의 가치를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수고가 보답을 보장하지 않을 때에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애쓸 이유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25절). 이어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하시는 일을 제시합니다(28–29절). 몸을 귀하게 돌보듯 아내의 삶을 살피라는 권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신 사랑을 바라보며 남편이 감당할 일은 아내를 향한 구체적인 돌봄입니다. 남편들에게 주어진 이 말씀에서, 우리도 저마다의 관계를 돌아볼 때 필요한 지혜를 얻습니다. 사랑의 수고가 향하는 곳에는 그 돌봄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맡기로 한 일을 성실히 감당하면 상대가 홀로 떠안을 짐을 덜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상대가 몸을 쉬게 할 시간을 얻는다면, 나의 수고는 그의 삶을 보살피는 데 쓰인 것입니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수고는 상대의 시간도 귀하게 여기는 일이 됩니다. 지키기 어려워진 약속을 일찍 알리고 함께 다시 정하는 일에도 책임이 담깁니다. 이런 행동은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보여 주기 전에 상대의 하루에 실제 도움을 줍니다. 사랑이 마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생활 속에서 형태를 얻는 자리입니다.

때로는 많은 것을 해 주려는 열심보다 이미 맡은 일을 꾸준히 감당하는 편이 더 큰 돌봄이 됩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준비하는 정성과 상대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살피는 정성이 함께 가야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일도 여기에 속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내 말과 행동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책임 있게 돌아보는 것입니다. 성실함은 수고의 양만 늘리는 데서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세심하게 대하는 방향으로 깊어집니다.

그런 수고를 받는 사람에게도 기뻐하며 응답할 자리가 있습니다. 고마움을 말하고, 상대의 정성을 알아주며, 자신의 몫을 함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수고가 이어질 때 관계 안에는 안심하고 기대할 만한 것들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런 기쁨을 충분히 바랄 수 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성실함만으로 두 사람의 마음과 앞날을 모두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말과 행동을 성실히 감당하는 일은 오늘 내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상대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도장처럼 품어 달라는 청을 다시 생각합니다. 소중히 여겨지고 싶은 사람의 바람 앞에, 그를 소중히 대할 수 있는 내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사랑의 귀함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과 맺은 약속을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도 귀하게 다루는 일입니다. 함께 지기로 한 무게를 감당하고, 건넬 수 있는 기쁨을 기꺼이 건네는 일입니다. 우리의 성실함은 그렇게 사랑하는 이의 삶을 향할 수 있습니다.

값으로 살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오늘 내게 가능한 일은 그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그의 삶에 필요한 돌봄을 건넬 수 있다는 데서 주는 의미를 찾습니다. 소중히 여겨지고 싶은 마음과 소중히 대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나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에 품고 가까이 두어 달라는 청에, 오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성으로 응답합니다.